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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균형발전 박람회’ 9일 개막
국가균형발전위원회·산자부 공동 주최
지자체와 공기업, 시민사회 머리 맞대
‘한국형 뉴딜’ 균형발전의 길 모색
집행 방식 고민·정책 대안 등 제시

개막세션 발제를 하고 있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유튜브 <균형발전TV> 화면 갈무리.
개막세션 발제를 하고 있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유튜브 <균형발전TV> 화면 갈무리.

지난 6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보다 14만명 더 많아지면서 올해 연간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할 것이 확실시된다. 심각한 국가 불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하나파워볼

나라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지식과 대안을 공유하는 ‘2020 대한민국 균형발전 박람회’가 지난 9일 충북 청주대학교에서 막을 올렸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해 17개 지방자치단체들이 함께 하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의견을 나누고 지역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모색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10일 오전 개막식 행사에 참여한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축사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이 지사는 “중앙정부가 공모사업을 통해 지방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장, 관여, 지시하고 있다”면서 “포괄보조사업 같은 제도를 도입해 지방이 자율성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균형발전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을 지낸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지역내총생산 중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국세 비중이 느는 등 여러 측면에서 지역 불균형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판 뉴딜의 지역 버전인 지역균형 뉴딜 사업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해법을 내놨다.

개막세션에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발제를 통해 위원회가 진단한 균형발전의 문제와 대안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수도권 부동산 쏠림 현상에 대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50여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150배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내 지대는 3천배 상승했다. 소득보다 집값 상승이 20배 많이 오른 것이다. 여기에 같은 기간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대를 비교하면 2대 1이다. 수도권에 땅을 마련해서 살거나 사업을 하면 수입을 두배로 가져갈 수 있는 셈”이라며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현상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 정책을 펼 때 지역에서 사업하는 게 유리하도록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토론에 참여한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수도권 부동산 쏠림 현상에 대해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익을 나누는 제도를 만들고, 종합부동산세나 상생발전기금을 손보는 한편 1가구 2주택자가 비수도권 대신 수도권 소재 주택을 판매하도록 유도하는 세제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균형발전정책박람회 자문위원장이기도 한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균형발전위원회가 문제 해결할 법적 근거와 역량을 갖춘 행정위원회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면서 지방자치단체, 기업, 시민사회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협의의 정치를 이뤄야한다고 지적했다. 농촌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농촌에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홍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농촌을 문제지역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활용해야 하는 출구이자 해법으로 봐야한다”면서 “비대면, 소규모 분산의 장점,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삶의 방태를 활용한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농촌에서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12일까지 진행되는 균형발전 박람회 행사는 10일과 11일 양일간 유튜브 채널 <를 통해 중계된다. 시민들은 <균형발전TV>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지역균형 뉴딜 사례와 ‘2020 균형발전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입상한 시민들의 아이디어 영상을 볼 수 있다. 균형발전 박람회 누리집은 12월 말까지 운영된다.

♣️H6s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

단원고 2학년 3반 김시연 엄마가 다시 길을 나선 이유.. 문 정부, 세월호 진상규명 약속 지켜야

[윤경희 기자]

▲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이 10월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명확합니다. 진상규명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성역 없는 진상규명의 책임을 져야 할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세월호참사 당시를 중심으로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국정원과 군을 비롯한 정부의 책임, 관련자의 실체와 책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구조 방기는 물론이고 세월호의 급선회와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청와대와 국정원, 군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사의 첫 출발인 국정원과 군의 관련 기록과 증거를 찾아내는 일은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파워볼게임

2019년 11월에 출범한 검찰 특별수사단에서는 국정원과 군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압수수색 등 수사를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고, 2018년 12월에 조사개시를 선언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국정원과 군에 대한 접근과 협조가 극히 제한적이라 이들의 행적을 밝히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국정원과 군은 대통령이 직접 거느리는 조직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여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국정원과 군의 기록을 책임지고 찾아내야 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검증하고 책임지기 위한 방한도 함께 제시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의지와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면 진상규명 약속을 지킬 생각이 진짜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0월 6일 시작한, 세월호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두 가지 국민동의청원,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등을 위한 특별법개정’과 ‘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결의’가 10월 31일에 10만 명의 동의를 채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책임자이듯 21대 국회도 세월호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책임자입니다.

국회는 스스로 수사권 없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런 특조위가 박근혜 정부에 의해 난도질당하다가 결국 강제해산 당할 때 국회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방해한 책임이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국회에도 있다는 말입니다. 21대 국회 다수 의원들이 그러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할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기록물 공개결의, 공소시효 정지, 사참위 권한 강화 및 기간 연장, 조사인원 확충을 위한 입법이 그 약속들입니다. 이 약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야 합니다. 가결을 위한 표가 모자라면 당에 구애받지 말고 끝까지 설득해서 표를 모아야 합니다. 약속을 넘어 모든 정당이 함께 본회의에서 모든 입법을 실현하는 것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지체시킨 국회의 원죄를 씻는 길입니다.

우리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의 엄마아빠들은 지난 4월부터 전국의 21대 국회의원 후보자 천여 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법안에 관하여 설명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면 약속을 지킬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이들 중 178명이 국회의원이 되었고, 21대 국회 개원 후 우리 가족들이 직접 만든 약속 명패를 들고 의원실을 찾아가 다시 한번 약속을 확인하고 명패를 문 앞에 붙이고 엄마들이 만든 나비 배지를 달아주었습니다.

세월호참사로 세 아이를 잃었습니다

저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김시연의 엄마이고, 단원고등학교 2학년 9반 박예지의 외사촌고모입니다. 예지의 엄마와 저는 같은 나이에 함께 배불러 함께 아이를 낳았고 같은 유치원을 보내고 같은 고등학교에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는 같이 수학여행을 떠났고 시연이는 4월 21일에, 예지는 4월 23일에 우리에게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나를 이모라고 부르던 우리 시연이의 친구가 스스로 시연이 곁으로 떠나갔습니다. 

눈을 감으면 두려움에 가득 차 ‘우리반 나갈 차례래. 구조돼서 전화할게’라고 말하던 시연이의 목소리가 여전히 또렷이 들립니다. 주검이 되어서도 그 약속을 지키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세월호 밖으로 스스로 부양되어 돌아온 내 딸 시연이. 퉁퉁 부은 채 굳어버린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주면서도 소리 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시연이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아직 바닷속에 있는 예지 생각에 시연이를 제대로 보내줄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 세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남은 내 아이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내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침몰했는지, 왜 그날 세월호만 출항을 했는지, 우리 엄마아빠들은 꼭 알아야겠고 그래서 꼭 밝혀내려 합니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더라도 내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지만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이 사회에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반드시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것만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으며 매일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6년하고 7개월이 되었습니다. 

수원지법 “사전 서면 통지 없었다”

사전에 소방특별조사에 대한 서면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조사를 벌이려는 소방관과 공무원을 폭행한 6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News1 조태형 기자
사전에 소방특별조사에 대한 서면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조사를 벌이려는 소방관과 공무원을 폭행한 6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News1 조태형 기자

(수원=뉴스1) 유재규 기자 = 사전에 소방특별조사에 대한 서면 통보없이 조사를 벌이려는 소방관과 공무원을 폭행해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파워볼게임

수원지법 제4형사부(주진암 부장판사)는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64)에 대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소방관과 공무원을 폭행하고 소방특별조사를 방해한 혐의가 인정돼 원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경기 과천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던 A씨는 2019년 11월5일 오후 3시50분께 소방특별조사를 위해 찾아온 과천소방서 소속 소방관과 과천시청 소속 공무원 등 2명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해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당시 소방관과 공무원에게 “XXX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라는 욕설과 함께 소방관의 멱살을 잡고 공무원에게 얼굴을 1차례 가격한 것으로 파악됐다.

원심은 이 사건으로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들에 의해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소방 측에서 A씨에게 소방특별조사 방문을 위한 연락만 취했을 뿐, 서면으로 정식통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소방시설법에 정한 바와 같이 소방청장이 A씨에게 7일 전, 서면으로 통지 했어야 했고 A씨와 3차례 연락을 통해 일정을 논의하는 등 소방특별조사에 해당하는 재난·재해 상황도 아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또 A씨가 사정이 생겨 소방청장에게 ‘소방특별조사 연기신청’을 했어야 하는데 사건당일,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며 “소방특별조사를 하려고 한 관계 공무원들의 행위가 오히려 소방시설법을 위반한 것” 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따라서 해당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 해당함에도 A씨에 대한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라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koo@news1.kr

민관협의회 ‘선미촌 2.0 도시재생의 방향 모색’ 집담회 개최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민간위원장 조선희)가 10일 성평등 전주 1층 커뮤니티홀에서 ‘2020년 선미촌정비 민관협의회 집담회’을 개최했다.(전주시 제공)© 뉴스1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민간위원장 조선희)가 10일 성평등 전주 1층 커뮤니티홀에서 ‘2020년 선미촌정비 민관협의회 집담회’을 개최했다.(전주시 제공)© 뉴스1

(전주=뉴스1) 임충식 기자 = 성매매집결지인 전주 선미촌에 대한 문화재생사업 시즌2를 앞두고 여성인권활동가와 예술가, 도시재생 전문가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FX마진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민간위원장 조선희)는 10일 성평등 전주 1층 커뮤니티홀에서 ‘2020년 선미촌정비 민관협의회 집담회’을 개최했다.

이번 집담회는 전주시가 추진할 예정인 ‘선미촌 2.0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주시는 지난 2014년부터 선미촌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을 실시해왔으며, 현재 2.0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두번째 사업은 인권과 예술을 주제로 한 거점시설 유치 등이 핵심이다.

이날 잡담회는 서난이 전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장의 ‘여성인권·예술·마을공동체 상생과 공존을 위한 제언’ 발제로 시작됐다. 서 의원에 이어 김창환 전주시 도시혁신센터장도 ‘선미촌에서 도시재생을 배우다’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어 도시재생 전문가와 예술가, 여성인권활동가,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성매매집결지 완전 종식을 위한 민·관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또 선미촌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조선희 민간위원장은 “이번 집담회는 선미촌 도시재생의 시즌2 도약을 위해 마련된 자리”라며 “선미촌정비 민관협의회 위원 및 예술가,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단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선미촌을 가장 특색 있는 인권과 예술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신계숙 전주시 사회연대지원단장은 “올해를 성매매 종식의 원년으로 삼아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며 주민공동체 활동을 더욱 확대하는 선미촌 2.0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며 “선미촌이 전주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31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선미촌 내 옛 성매매업소 건물에서 '노송늬우스박물관' 개관식이 열린 가운데 김승수 전주시장과 박병술 전주시의장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전주시 제공)2020.1.31/뉴스1 © News1
지난 1월31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선미촌 내 옛 성매매업소 건물에서 ‘노송늬우스박물관’ 개관식이 열린 가운데 김승수 전주시장과 박병술 전주시의장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전주시 제공)2020.1.31/뉴스1 © News1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은 전주의 대표적인 성매매집결지인 선미촌을 성평등 공간이자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으로, 지난 2014년 시작됐다.

전주시 선미촌민관협의회가 발족한 것도 이때다. 협의회는 그동안 집담회, 정책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점진적 기능전환방식으로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

사업이 추진되면서 2000년대 초반 85개에 이르렀던 성매매업소는 현재 15개소까지 줄어든 상태다.

시는 이 지역의 폐·공가 및 성매매업소를 매입해 Δ물결서사(예술책방) Δ시티가든(마을정원) Δ성평등전주 커먼즈필드(주민협력소통공간) Δ노송늬우스박물관(마을사박물관) Δ새활용센터 다시봄을 조성했다.

이와 함께 Δ보안등 33개 및 가로등 57개소 설치 Δ우범지대 방범용 CCTV 7개소 설치 Δ8개 구간 골목길 정비 및 기억골목 조성 등 성매매집결지 특유의 어두운 환경을 밝게 바꿨다.

환경이 바뀌면서 이곳에서 발생하던 범죄 발생 건수도 감소하고 있다. 실제 성매매집결지가 위치한 서노송예술촌 일대의 112 신고를 보면 2015년 1만8000여 회에서 지난해 1만2000여 회로 줄어들었다.

이같은 성과에 큰 역할을 한 협의회는 지난 2015년 전국 지속발전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7월에는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 인증을 받기도 했다.

94chung@news1.kr

[표지이야기]어머니 이소선을 기다린 전태일, 그들이 아침이 올 때까지 밤새 나누는 대화

1980년대 전태일의 가족은 서울 창동의 빈민촌에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 이소선(오른쪽 둘째)과 동생 태삼, 순옥, 순덕이 보인다. 1987년 2월 찍었다. 전태일재단 제공
1980년대 전태일의 가족은 서울 창동의 빈민촌에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 이소선(오른쪽 둘째)과 동생 태삼, 순옥, 순덕이 보인다. 1987년 2월 찍었다. 전태일재단 제공

전태일 열사 어머니인 이소선씨와 함께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한 바 있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이 전태일과 어머니가 나누는 가상의 대화를 구성해 썼다. 두 사람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 지척에 묻혀 있다. _편집자

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태일이 엄마”를 찾던 이웃 종철이 아버지가 조용하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이소선은 조용히 전태일을 불렀다.

“어머니, 부르셨어요?”

“그래. 너도 잠을 제대로 못 잤구나.”

“그렇죠. 벌써 50년, 이곳에서 저는 기다렸어요. 언젠가 내가 굴리다 다 못 굴린 그 덩이를 다 굴렸다는 소식을 듣기를 말이죠. 노동자들이 일어나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 기뻤어요. 해마다 내 무덤 앞에 와서 환한 얼굴로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던 노동자들이 기억나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기운이 없어 보여요. 다들 힘들다고 해요.”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전태일이 먼저 입을 뗐다.

“어머니, 제가 세상을 뜬 뒤 어머니가 저와의 약속을 지키려 무던히 애쓰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서 미안했어요. 장남으로 어려운 살림 꾸려가는 어머니를 돕지도 못하면서 어머니에게 몹쓸 짓을 하고 떠나면서도 제가 못다 한 일을 꼭 이뤄달라고 했는데… 어머니를 믿었어요.”

“태일아, 네가 피를 토하면서도 약속하라고 했던 그 모습을 어떻게 잊냐, 그러면 사람이 아니지. 그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만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였어. 그러다가 세상을 봤고 큰 공부를 했지. 너를 여기 묻고 집에 가서 며칠 있는데 함석헌 선생님이 찾아오셨어. 그분이 내 손을 잡고는 전태일은 예수처럼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죽은 거다. 그러니까 전태일이 수많은 전태일로 부활할 거라고 했어.”

“누가 그러더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제 곁에 누웠을 때 마흔한 살에 태일이를 잃고 꼭 41년을 더 사시다 가셨다고, 그 41년 동안 250번을 잡혀갔다고. 어머니가 당한 고초, 너무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를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살도 오래전에 다 녹아버리고 몸이 없으니 어머니를 안아주지 못했어요. 그게 슬펐어요.”

“경찰들에게 둘러싸이고, 중앙정보부에도 끌려가고, ‘빨갱이라고 불라’고 매질당할 때도 나는 이를 악물었어. 나는 태일이 엄마다. 목숨까지 버린 자식 앞에서 비겁하면 안 되잖아.”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태일이 밝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태삼이가 어머니 비석 만드는 날 그랬지요. 검은 바탕 비석에 어머니가 마이크 잡은 사진을 새겨 넣은 걸 보고는 어머니가 여기 모란공원 사람들하고 매일 밤 집회할 거라고 말이죠. 참, 어머니는 사람들 웃기고 울리고 너무 말씀을 재밌게 하세요.”

“태일아, 내가 뭔 말을 잘하냐. 배운 것도 없고 무식쟁이 할머니인데…. 내가 싸우면서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박수 치고 좋아하더라. 그럴 때 꼭 한마디 부탁했어. 노동자가 단결하면 두려울 게 없다, 절대 갈라지지 말고 하나가 돼서 싸워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태일이 바라던 세상이 온다고 말이지.”

“맞아요. 모여야 힘이 나죠. 저는 그게 사랑인 거 같아요. 우리가 사는 이유가 그런 건데…. 어, 저분이 이 아침에 벌써 오시네.”

이제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어둠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때였다. 김미숙씨가 박래전을 지나서 성유보를 지나서 노란 자전거 탄 김용균 앞에 멈춘다.

“애고, 날이 밝기도 전에 용균이 엄마가 왔네. 저 엄마가 밤에 잠도 못 잘 거야. 저 엄마를 보면 내 생각이 나. 용균이도 너처럼 꽃다운 나이에 죽었잖아. 두 동강이 난 아들을 봤잖아. 얼마나 끔찍했을까. 저 엄마도 나처럼 평생 용균이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거야.”

“어머니가 평화시장 노동자들 국수 끓여 먹이면서 노조 만들고, 노동자들 투쟁하는 곳마다 응원해주고, 나중에는 학생들 투쟁하는 데나 재야인사들 투쟁하는 데도 같이 합류해서 싸웠잖아요. 그러다가 의문사한 엄마들, 아버지들하고 의문사 진상 규명하라고 싸우고. 참, 우리 엄마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게 다 똑같아. 저 사람도 자식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동료를 잃었잖아. 그 사람들이 불러서 간 게 아냐. 나는 너하고 같이 간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 눈을 감겨줬냐. 그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 목매어 죽고, 분신해서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당해 죽고…. 죽음의 행렬이었어. 저걸 멈춰야 하는데, 제발 죽을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싸우자고 눈물로 호소하고 다녔어.”

“그러니까요. 왜 아직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하죠?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고 국민소득도 높다는데 왜 아직도 장시간 노동에다가 저임금으로 사람들 고혈을 쥐어짜는 거죠? 제가 만들고 싶었던 ‘태일피복’, 3천만원이 없어서 포기한 그런 업체가 왜 안 되는 거죠? 근로기준법 지키고 노동조합 활동 보장해주면서도 이윤을 올리는 그런 기업이 왜 안 되는 거죠?”

“가진 사람들이 너무 탐욕스러워. 정치인들도 탐욕을 부리는 이들과 한패야. 그러니까 안 되지. 노동자 알기를 노예나 머슴 부리듯 한다니까. 나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 없이 마른 수건 짜듯 쥐어짜기만 하다가 버리잖아. 그러니 자꾸 죽지.”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때 내 모든 것을 던져서 먹구름 뒤덮인 하늘에 작은 구멍 하나 낸 거거든요. 그 구멍으로 사람들에게 파란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구멍을 여러 사람이 넓히고 넓혀서 세상 사람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구멍이 다시 좁아지고 있어요. 먹구름 덮인 하늘을 이고 땅에서 서로 싸우며 살 것 같아서 걱정돼요.”

그때다. 사람들이 서리 맞은 풀을 밟고 오는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어느새 동쪽 산 위로 해가 많이 올라 있었다. 발소리들은 전태일 앞에 멈추고 깃발을 세운다.

“안 되겠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거야. 사람들이 뭔 얘기 하나 잘 들어보자.”

“그래요. 밤에 얘기해요.”

어느새 새들이 날아서 주위에 내려앉는다. 김미숙씨도 와서 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전태일과 이소선은 종일 사람들 얘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갈까, 그게 궁금해진다. 오늘은 50년 전 그날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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